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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학

볼프강 틸만스, 천재의 재능은 공간을 완성하는 것

by 쁘띠감독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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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식 교육 위주로 돌아가고 - 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미국 교육에서 파생된 일본교육 - 과 유럽식 교육 그리고 중국에서 건너온 유교가 산재된 나라이다.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게 국가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면 대충 20~30퍼센트 정도가 국가를 신뢰한다고 하는데 중국 같은 경우는 80-90이 신뢰한다고 한다.
외부에서 봤을 때 중국은 인권도 없어 보이고 자유도 없어 보이지만 중국의 젊은 세대는 우리를 배부르게 해주고 잘 살게 해준 공산당에 무한한 믿음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몇십년 후엔 중국의 이 세대가 한국의 태극기 부대와 똑같이 될 거란 생각에 소름부터 밀려온다. 
한국에선 국뽕이 조롱받는 믿음중 하나이지만, 중국의 국뽕은 자국에서 사랑받는 행위중 하나이다. 
나라마다 가지는 특성과 시스템이 주는 것이 분명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할 것이다. 

한국의 교육에서 과연 세계적인 예술가가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다시 물어 봐야 한다. 
당신의 아이를 예술가로 키울 수 있는 자신이 있나요? 여러 의견이 나오겠지만, 대부분 용기가 필요하다는데에는 동조할 것이다. 

볼프강 틸만스 사진집은 한권쯤 구매해도 부족함이 없다. 당신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다.


미국 뉴욕에선 우스갯소리로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유대인이거나 성소수자여야만 한다는 말이 있는데(카니예는 유대인 발언으로 정말 끝도 모르는 추락은 하지만 결국 그들 싸움이다.) 나라마다 필요충분의 요건들이 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에 외화를 벌어야 한다는 국가 기조에 따라 한국의 젊은 남자, 여자를 독일로 파견을 보냈다. 
실제 젊은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율도 상당했다. 
그들은 독일에 가서 광부와 간호사로서 일하고 본인들은 그 당시 한국에서 못 벌던 금액의 돈을 벌고 국가는 그들에게서 외화를 걷을 수 있었다. 
지금도 독일에 가면 한국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고 한국어를 못하는 다음 세대의 사람들도 많다. 

한국에서 이 작업 표절한 작가들 참 많다.


독일은 한국이랑 비슷한 성격을 가진 국가 중에 하나이다. 
유럽에선 휴가로 섬에 놀러 가서 아침 일찍 바다에 좋은 자리 맡으려고 선베드가 있는 해변으로 가면 항상 독일인들이 먼저 자리를 맡고 있다고 하는 만큼 일찍 일어나서 행동한다. 
한국 사람들 생각나지 않는가?

그래서, 60년대에 한국 사람들이 독일에 갔을 때, 독일 사람들은 성실하지 못한 이민자들보다 백배는 낫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도 다루어 설명해 주겠다. 다 이유가 있다. 

독일도 한국과 같이 분단을 겪은 나라이고 지금도 통일문제로 시끄러운 나라이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우리가 그냥 프랑크푸르트라고 부르는 이 도시는 시민 세금의 70% 정도가 아직도 베를린 재건 세금으로 투여되고 있으니 이곳 시민의 불만이 한두 개가 아닐 것이다.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실제 많은 작품 컬렉터들은 베를린 보다 프랑크푸르트의 갤러리에서 더 많이 거래된다. 
일반인들도 쉽게 구매하는 시스템이 놓여있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 중에 무엇보다도 공항과 다운타운의 거리감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 부분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건 판매나 구매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럴 텐데, 실제 구매를 위해선 접근성이 상당히 중요하다.

제아무리 좋은 작품을 가지고 있는 갤러리가 있더라도 접근성이 없으면 다른 곳에서 사지 뭐 하는 마음이 생겨버린다. 

여러분들이 물건을 살 때, 인터넷으로 쉽게 클릭해서 구매하려고 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볼프강 틸만스는 독일 태생의 사진가이자 예술가, 활동가로 1990년대부터 현대 미술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사진부터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인물 사진 및 풍경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틸만스는 2000년 권위 있는 터너상(이 상을 받은 작가 중 사진 매체로 상을 받은 사람은 볼프강 혼자이며 최연소로 수상해서 시선을 더 끌었다)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과 영예를 안았으며, 그의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전시했다.

볼프강 틸만스는 1968년 8월 16일 독일 렘샤이트에서 태어났다.
함부르크에서 자랐으며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함부르크 미술학교에 다녔습니다.
미술학교 재학 중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틸만스는 사진 매체를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기법과 피사체를 사용하는 파격적인 사진 접근 방식으로 유명해졌다.

1990년대 초, 틸만스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예술계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런던의 밤 문화의 에너지와 흥분을 포착한 런던의 클럽 장면 사진으로 주목받았다.
이 사진들은 i-D, The Face와 같은 잡지에 게재되어 틸만스가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로서의 명성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틸만스는 사진을 벽에 직접 붙이거나 여러 개를 묶어 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진을 전시하는 등 작품의 표현 방식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사진을 액자에 넣고 전시하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으며, 이 분야에서 혁신가로서 틸만스의 명성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90년대 중반, 틸만스는 클럽 현장을 넘어 보다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사진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진에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자연 세계의 디테일을 클로즈업한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또한 틸만스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색다른 기법을 사용하여 사진을 현상하고 인쇄하는 과정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볼프강은 한국의 현대카드쪽 사람들이랑 교류가 있어서 한국을 와서 촬영을 했지만 모니터상에는 SK 다.


틸만스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는 1997년에 시작한 "콩코드" 사진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였던 콩코드 비행기의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틸먼스는 콩코드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음의 장벽을 깰 수 있는 능력에 매료되어 활주로, 공중, 활주로 등 다양한 환경에서 비행기를 촬영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사진은 대규모로 매우 세밀하게 촬영되었으며, 상징적인 비행기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틸만스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1993년에 시작한 "Freischwimmer"라는 제목의 사진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는 다중 노출, 색상 조작, 이미지 왜곡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만든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사진을 선보인다. 
이 시리즈의 사진에는 일상적인 사물이나 자연 세계의 세부 사항을 클로즈업한 모습이 자주 등장하며, 군집으로 걸거나 벽에 직접 고정하는 등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최근 몇 년 동안 틸만스는 사진을 넘어 비디오, 조각, 설치 등 다른 형태의 예술로 작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 중 하나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전시된 "진실 연구 센터"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입니다. 
이 설치물에는 신문 스크랩, 엽서, 사진 등 틸만스가 수년에 걸쳐 수집한 사물과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 오브제들은 일련의 테이블과 선반에 전시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은 이 오브제들과 상호작용하며 진실의 본질에 대한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행동주의와 정치 참여 틸만스는 커리어 내내 정치 및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틸만스 스스로가 성소수자여서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여 왔으며, 자신의 예술을 통해 평등과 수용을 장려해 왔다. 
그는 성소수자 권리를 홍보하는 이미지와 슬로건이 담긴 포스터, 전단 및 기타 자료를 제작했으며, 이러한 자료의 판매 수익금을 성소수자 단체에 기부해 왔다.


2016년에는 영국을 유럽연합에 잔류시키기 위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잔류" 투표를 촉구하는 포스터와 전단을 제작했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에도 틸만스는 계속해서 유럽연합을 옹호하고 영국 정부의 브렉시트 절차 처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틸먼스는 기후 변화의 영향과 자연 서식지 파괴를 강조하는 일련의 사진을 제작하는 등 환경 운동에도 참여해 왔습니다. 
그는 화석 연료 산업을 비판하며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재생 에너지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를 촉구해 왔습니다.



틸만스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 센터 등 전 세계 주요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되었습니다. 
또한 베니스 비엔날레, 도큐멘트 등 수많은 국제 비엔날레에 참여했습니다.

2015년에는 사진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인 핫셀블레드 재단 국제 사진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은 "사진의 전통을 변화시키고 매체를 지속해서 재정의하는 능력"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볼프강 틸만스는 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선구자적인 예술가입니다. 
사진에 대한 그의 색다른 접근 방식과 다양한 기법과 피사체를 실험하려는 그의 의지는 사진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 도전했습니다. 
또한 틸만스는 행동주의와 정치 참여로 사회 및 환경 문제에 대한 글로벌 대화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예술의 경계를 넓히고 변화를 옹호하는 틸만스는 동 세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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