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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학

더 레슬러, 사람들은 내 삶을 흔들려고만 한다.

by 쁘띠감독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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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남성들에게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스포츠가 달랐습니다.

물론 시대를 불문하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도 분명 존재합니다.

반대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대중의 인기를 더 이상 얻지 못한 사장되는 스포츠도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사랑을 받았던 스포츠는 프로레슬링이었습니다.

지금의 종합격투기와 비슷한 사랑을 받았던 운동이었습니다.

헐크 호간, 얼티밋 워리어, 박치기왕 김일, 역도산, 리브레, 타이거 마스크 등 당시의 팬들에게 흥분을 가져다주는 이름들이었습니다.

현재 프로레슬링은 미국과 멕시코쪽에서의 마니아 문화 그리고 일본에서의 마니아 문화 정도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드팬들은 프로레슬링을 같이 보냈던 시간을 추억하지만 지금의 프로레슬링을 보는 관객은 짜고 치는 듯한 스포츠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의견들도 내놓습니다.

올드팬들도 짜고친다는 걸 인지하는 팬도 있지만 확증편향으로 감정이입하여 짜고 치는 부분을 인식배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짜고치는것보다 중요한 걸 찾으려는 팬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 입니다.

영화도 그렇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뻔히 알면서도 우린 웃고 울고 분노하고 짜증 나고 무서워합니다.

대런 애러노프스키는 '더 레슬러'에서 이런 관통하는 부분들을 바라봤습니다.

똑똑합니다. 또한 그는 더 레슬러의 주연을 '미키 루크'라고 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부분도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1980년대 연기력을 출중하진 않지만 젊은 여성들에게 섹시어필 하는 남자 배우 그리고 젊은 남성들에게는 '브루스 윌리스를 닮았지만 보다 더 도회적인 느낌을 주는 배우' 정도로 인식되었던 배우였습니다.

미키 루크는 자신을 어떤 곳에서 필요로 하는지 알았는지 에로틱한 분위기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면서 주가를 올리던 중 큰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사고는 몸 쪽의 뼈들이 부러지는 사고가 아닌 배우에게 너무나 중요한 얼굴의 뼈들을 산산조각 나게 만들었고 영화를 출연하며 벌은 돈은 사고 당시 관리가 안되어 있던 상황이어서 정말 별로인 판단을 해버립니다. 

돌팔이 의사들에게 싼 가격에 얼굴 수술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맡겨 버립니다.

자신이 봐도 제대로 된 수술이 아니라는 것이 보이니 계속해서 수술을 받았을 거란 생각을 하니 참 안타깝습니다.

자신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거라 믿고 일들을 진행했을 거라 생각했을 거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대런 애러노프스키는 원래 여주연의 연기 역량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재능이 있는 감독입니다.

그래서 대런과 작업한 여주연의 다음 영화에서 다른 감독과 작업을 하면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여배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버립니다.

'더 레슬러'는 전직 레슬링 슈퍼스타 랜디 램 로빈슨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랜디는 허드렛일들을 하며 적은 돈을 위해 3류 레슬링대회를 뜀으로써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망가져버린 남자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선 스테로이드 복용이 너무나도 쉽습니다. 

마약도 1달러에서 3달러면 구할 수 있는데 스테로이드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영화에서는 랜디는 전직 레슬링 슈퍼스타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면 품위유지비를 쓰는 것처럼 스테로이드를 자신의 몸에 투여합니다.

팬들은 그의 거대한 몸을 보며 여전히 폼이 죽지 않았다고 좋아합니다. 

정작 본인은 속이 곪아갑니다.

미키 루크의 연기는 자신의 삶이 투영된 부분이 많이 보여서인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여전히 구원의 희망에 매달린 한 남자의 고통과 절박함을 포착해서 보입니다. 

자신의 실제 삶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전해질 정도입니다.

대런 애러노프스키는 자신의 영화를 디렉팅 할 때 꼭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로 관여된 산업을 묘사합니다. 

예를 들어 블랙 스완에서 우리가 봤을 때 한없이 깨끗해 보였던 '발레 무용'의 이면을 보여주는 방식은 무용의 근처도 못 가본 사람들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더 레슬러'에서도 마찬가지로 WWE의 화려함과 달리 레슬링 세계의 초라하고 잔인한 지하세계를 보여줍니다.

Show must go on이라는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슬로건에 걸맞게 관객은 더 많은 피를 원하고 선수들은 자신들의 몸이 다 망가지고 운동이 끝난 후 자신의 삶이 한없이 떨어질 거라는 걸 알지만 계속 뛰어 나갑니다.

이 영화에서 랜디는 퇴물이 되었음에도 충성스러운 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팬들은 그를 영웅이라 생각하고 힘과 회복력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팬들이 점점 랜디를 향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랜디의 육체적, 정서적인 붕괴 직전까지 몰아붙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란게 이렇게 복잡 미묘합니다. 

사랑의 거리와 깊이에 대한 고찰은 우리네들도 항상 가지고 가야 할 고민인 거 같습니다.

영화상에서 랜디는 스트리퍼 캐시디를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들이 참 인상 깊은데 서로가 서로에게서 밑바닥에서 보내는 시간과 공간이 어떤 건지 알고 이해하는 모습과 함께 여전히 구원에 대한 희망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순간은 가슴 아픈 순간입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영화입니다.

잔인하고 용서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한 투쟁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을 향해 반항하고 저항하세요.

우리나라의 유명한 영화 평론가가 이 영화를 스포츠 신파의 일종 정도로 한줄평에 내놓았다고 넘길만한 영화가 아닙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2009년에 개봉했을 때 총관객은 6만 명이 채 안될 정도로 흥행참패를 하였지만 작품성은 흥행과 정비례하는 건 아니니깐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올 때,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랜디가 세상에게 불러주는 노래 또는 자신에게 불러주는 노래 같아 마음에 울림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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